
재생에너지 확대의 핵심 수단으로 꼽혀온 해상풍력발전이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비용 급등이라는 역풍을 맞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국 석유 대기업 BP가 일본 야마가타현 유자마치 앞바다 해상풍력 사업에서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은 왜 일본의 유망 사업에서 발을 빼려는 것일까. 또 일본은 왜 이처럼 어려운 사업 환경 속에서도 해상풍력 투자를 이어가려는 것일까.
야마가타 앞바다 사업을 둘러싼 기대와 현실, 남은 일본 기업들이 마주한 과제를 살펴본다.
BP의 냉정한 판단이 드러낸 현실
여러 관계자에 따르면 BP는 마루베니가 주도하고 간사이전력, 도쿄가스, 건설회사 마루타카가 참여하는 사업 컨소시엄에서 탈퇴하는 방향으로 협의에 들어갔다.
야마가타현 유자마치 앞바다에서 추진되는 이 사업은 일본 경제산업성과 국토교통성의 공모를 거쳐 2024년 12월 마루베니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됐다. 발전 용량은 45만kW이며, 2030년 6월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마루베니 측은 “확정된 사실은 없다”고 밝혔고 BP 영국 본사도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BP가 철수하더라도 마루베니 컨소시엄은 사업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BP가 철수를 검토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전 세계적인 자재 가격 상승으로 사업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진 점이 배경으로 거론된다.
에너지정책 연구가 사에키 도시야는 “해상풍력 사업은 발전량 예측뿐만 아니라 건설비와 금리, 환율, 부품 조달, 해저 지반, 공사 지연 위험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며 “출자 기업 한 곳이 빠진다고 사업이 즉시 무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금 조달 조건과 위험 분담 구조를 재검토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BP가 맡았던 역할과 위험 부담을 나머지 기업들이 어느 정도까지 떠안을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투자 판단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해외 대형 에너지 기업들이 일본 해상풍력 사업에서 잇달아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 재생에너지 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재검토되는 해상풍력 투자
해상풍력을 둘러싼 역풍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 금리 인상으로 개발 비용이 당초 계획보다 크게 불어나면서 사업성이 무너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BP의 전략 전환이다. BP는 2020년 당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2019년의 20배인 50GW로 늘리고, 저탄소 분야 투자도 연간 50억달러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5년 2월 이 목표를 철회하고 재생에너지 중심 투자액을 8억달러 미만으로 대폭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석유와 가스 생산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다.
배경에는 BP 지분 약 5%를 보유한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비용 절감 요구와 2023년부터 2024년까지 이어진 실적 및 주가 부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BP는 같은 시기 정규직 약 5000명과 계약직 약 3000명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육상풍력 사업도 매각할 방침을 내놨다.
석유 메이저 가운데 재생에너지 투자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BP의 이 같은 전략 수정은 업계 전반의 흐름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사에키는 “BP의 전략 전환을 탈탄소의 종말로 해석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며 “핵심은 재생에너지 사업도 수익성과 자본 효율성을 엄격하게 따지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금리와 저렴한 자재비를 전제로 설계된 사업은 현재의 금융·물가 환경에서는 성립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장기 목표를 유지하더라도 개별 기업이 같은 속도로 투자를 이어간다는 보장은 없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왜 목표를 유지하나
일본 정부는 해상풍력을 재생에너지 주력 전원 확대의 핵심 수단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2030년까지 10GW, 2040년까지 30~45GW 규모의 사업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육상에서 재생에너지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일본에 해상풍력은 대규모 도입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재생에너지원으로 여겨져 왔다.
다만 이 목표는 정부의 인정을 받은 사업 규모를 의미할 뿐, 실제 가동에 들어간 발전 용량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기관들은 현재 목표만으로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충분히 기여하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인정을 받은 사업을 조기에 실제 가동으로 연결하기 위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높은 목표만 부각되는 사이 일본에서는 1차 공모를 통해 선정된 사업 일부가 이미 철수나 재검토에 들어갔다.
미쓰비시상사그룹은 2021년 입찰에서 지바현 조시 앞바다와 아키타현 노시로·유리혼조 앞바다 등 3개 해역을 매우 낮은 가격에 일괄 수주했다.
그러나 이후 인플레이션과 엔화 약세, 금리 상승, 해저 지반 조사에 따른 설계 변경 등이 겹치면서 풍력발전기 조달 비용이 공모 당시 예상치의 2배 이상으로 불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산업성과 국토교통성의 합동회의 분석에서도 이 같은 사업 환경 변화가 철수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미 수백억엔 규모의 손상차손이 반영됐으며, 일본 정부는 이를 계기로 공모 제도를 재검토하고 있다.
야마가타 앞바다에 쏠린 지역의 기대
야마가타 앞바다 프로젝트에는 거점 항만 정비와 지역 기업의 공급망 참여, 관련 산업 유치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모였다.
해상풍력발전기는 1기당 1만~2만개의 부품이 필요하다. 조선과 건설, 유지보수 등 관련 산업의 범위도 넓어 지방 항만도시에서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 기회로 주목받아 왔다.
이 같은 기대 자체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업 수익성이 국제 자재 가격과 금리 움직임에 크게 좌우되는 만큼, 지역 활성화의 기반이 되는 사업 계획 자체가 외부 환경 변화로 흔들릴 수 있다는 현실도 이번 BP의 움직임을 통해 다시 확인됐다.
외국계 기업의 참여가 줄어들 경우 대형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 조달 능력과 사업 관리 경험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도 지역 사회가 마주할 과제로 떠오른다.
마루베니 컨소시엄만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나
BP가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는 해외 대규모 해상풍력 사업 경험과 글로벌 자재 조달망은 일본 기업이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렵다.
해상풍력은 착공부터 가동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풍력발전기 역시 여전히 베스타스와 지멘스가메사 등 해외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엔화 약세가 이어질 경우 수입 핵심 설비 비용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일본 자연에너지재단 등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 해상풍력 설비 투자비는 태풍과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한 풍력발전기 인증 요건과 복잡한 해저 지질에 따른 설치비 증가 등으로 유럽의 기준 사례보다 약 20% 높은 것으로 추산된다.
또 송전망 연결 과정에서 변전소 증설 비용을 개발 사업자가 부담하는 제도도 비용 상승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 같은 구조적인 고비용 문제는 외국계 기업의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일본 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늘어난 비용은 결국 누가 부담하나
해상풍력 사업비가 당초 계획보다 늘어날 경우 이를 보완하는 장치로 고정가격매입제도인 FIT와 시장가격에 일정한 보조금을 더하는 FIP 제도가 있다.
그러나 건설비와 조달비 상승 폭이 제도가 예상한 수준을 넘어설 경우 최종 부담은 전기요금을 통해 국민과 기업에 전가될 수 있다.
에너지정책 전문가들은 단순한 균등화발전비용인 LCOE뿐만 아니라 전력망 안정을 위한 화력발전 예비 전력과 송전망 증설, 보조금 등을 포함한 종합 비용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평가 방식은 FCOE 등으로 불린다.
유럽과 미국의 대기업들이 경제성을 우선해 해상풍력 사업에서 철수하거나 규모를 줄이는 반면, 일본은 여전히 높은 도입 목표를 유지하고 있다.
탄소중립 달성과 에너지 자급률 향상이라는 정책 목표 자체는 타당하며, 해상풍력이 지닌 잠재력을 부정할 필요도 없다.
다만 해상풍력은 국제 자재 가격과 금리, 환율의 영향을 크게 받는 대형 인프라 사업이다. 당초 사업 계획이 무너질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BP의 철수 검토는 일본 해상풍력 사업이 수익성을 전제로 세웠던 기존 계획을 다시 점검해야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앞으로 일본 기업들만으로 사업을 이어가려면 늘어난 비용을 어떤 방식으로 나누고 누가 어느 수준까지 부담할지 투명하게 논의해야 한다.
과도한 기대나 지나친 비관에 치우치지 않고 실제 사업 여건을 바탕으로 냉정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