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챗GPT 등장 이후 AI에 대한 관심은 사무직 업무 효율화를 넘어 공장, 창고, 농장 같은 실제 작업 현장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로봇과 센서가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는 AI, 이른바 피지컬 AI 분야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을 보여주는 발표가 5월 22일 일본 산업용 로봇 2위 기업인 야스카와전기에서 나왔다.
야스카와전기는 2026~2029회계연도를 대상으로 한 새 중장기 경영 계획 Dash 35를 공개하고, 마지막 해인 2030년 2월 결산기 연결 영업이익을 1,000억 엔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2026년 2월 결산기 실적 473억 엔의 2.1배에 해당한다.
매출은 20% 증가한 6,500억 엔을 목표로 잡았다. 동시에 4년간 누적 투자액 2,500억 엔 가운데 1,200억 엔을 M&A와 지분 투자를 중심으로 한 전략 투자에 투입할 계획이다.
매출 목표는 20% 증가에 머무는 반면 영업이익은 2배 이상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단순한 사업 확대가 아니라 수익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야스카와전기의 계획이 나온 배경과 업계 구도, 그리고 실현 과정에서 제기되는 리스크를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정리한다.
화낙과 벌이는 로봇용 AI 경쟁
일본 산업용 로봇 업계에서는 세계 최대 기업인 화낙과 이를 뒤쫓는 야스카와전기가 오랫동안 경쟁해 왔다.
지금까지 경쟁의 중심은 로봇팔의 정밀도와 내구성 같은 하드웨어 성능이었다. 하지만 양사가 잇따라 내놓은 새 전략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로봇에 탑재되는 AI, 즉 로봇의 두뇌가 다음 경쟁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야스카와전기는 2023년 국제로봇전 iREX 단계에서 이미 엔비디아의 로봇 분야 파트너로 이름을 올렸다. 2025년 10월에는 후지쯔, 엔비디아와 3사 협력을 발표하는 등 피지컬 AI의 실제 적용을 일찍부터 추진해 왔다.
화낙도 대응 속도를 높이고 있다. 2025년 12월 엔비디아와 협력을 발표하고, 자사 산업용 로봇 약 200종을 AI로 제어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공개했다.
로봇 컨트롤러를 ROS2에 대응시키는 등 개방형 시스템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2026년 5월에는 구글과도 손잡고 AI 에이전트를 활용한 로봇 제어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야스카와전기가 이번에 M&A와 지분 투자에 1,200억 엔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배경에는 이러한 개발 경쟁이 있다.
자체적으로 부족한 AI와 소프트웨어 기술, 휴머노이드 개발 경험을 외부에서 끌어와 개발 시간을 줄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야스카와전기는 2025년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는 와세다대 출신 스타트업 도쿄로보틱스를 인수했다. 이번 전략 투자도 이러한 M&A 흐름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회성 판매에서 반복 매출로
새 경영 계획의 또 다른 핵심은 영업이익률을 2026년 2월 결산기 실적 8.7%에서 15.4%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사실 이 수치는 이전 중장기 경영 계획 Realize 25에서도 제시됐던 목표다. 야스카와전기에는 오래전부터 풀어야 할 과제였던 셈이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 제품으로 꼽히는 것은 이미지 처리용 GPU를 탑재한 AI 기반 산업용 로봇 MOTOMAN NEXT다.
이 로봇은 모양이나 위치가 일정하지 않은 물체를 다루는 작업처럼 기존 로봇으로는 자동화가 어려웠던 영역을 맡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판매 비중은 아직 낮다. 그러나 하드웨어를 한 번 판매하는 방식에 그치지 않고, AI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기능 추가를 통해 지속적으로 매출을 얻는 반복 매출형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는 것이 수익성 개선의 핵심으로 꼽힌다.
야스카와전기 상무집행임원은 2026년 6월 설명회에서 피지컬 AI 사업이 2029년 2월 결산기부터 이익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활용 분야도 넓어지고 있다. 기존에는 자동차 공장이 산업용 로봇의 주요 수요처였지만, 야스카와전기는 이를 식품, 물류, 농업, 재생의료 분야로 확대하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위생 관리가 중요한 식품 현장에 대응하는 스카라 로봇, 일본 농협 조직인 JA전농과 연계한 오이 잎 제거 작업 자동화, 아스텔라스제약과의 합작회사를 통한 재생의료 분야 진출, 휴머노이드 로봇 마호로를 활용한 세포 배양 등이 거론된다.
이는 제조업 자동화를 뒷받침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자리 잡겠다는 구상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시장의 시선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현지 한 애널리스트는 피지컬 AI 로봇의 대표 활용처가 아직 뚜렷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1980년대 산업용 로봇이 자동차 용접과 도장 라인에서 급성장했을 때처럼 시장을 이끌 만한 핵심 수요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리스크 1.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기업
야스카와전기의 계획 실현을 좌우할 가장 큰 외부 변수는 중국 기업의 부상이다. 중국 조사기관 MIR DATABANK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중국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에스톤 오토메이션이 화낙을 제치고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이노밴스 테크놀로지를 포함한 중국 현지 기업들은 낮은 가격과 빠른 개발 속도를 앞세워 서보모터와 산업용 로봇 같은 일본 기업의 핵심 사업 영역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로봇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밀고 있다. 2026년부터 시작되는 제15차 5개년 계획에서 로보틱스와 피지컬 AI에 가까운 개념인 체화 지능을 양자기술, 6G와 함께 국가 우선 산업으로 지정했다.
중국 내 산업용 로봇 국산화율은 이미 55%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후지경제는 중국 제조업용 로봇 시장이 2030년에는 2024년보다 47.8%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야스카와전기 실적에서도 중국 시장은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모션 제어 사업은 중국 전자부품 시장 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다.
여기에 중국 기업들의 존재감까지 커지고 있는 만큼, 1,200억 엔 규모의 전략 투자가 가격 경쟁력과 개발 속도 양쪽에서 맞설 수 있는 기술과 사업을 확보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될지는 앞으로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리스크 2. 반복된 목표 달성 실패
또 하나 짚어야 할 부분은 야스카와전기 스스로 이전 경영 계획 Realize 25에 대해 전체 실적과 재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는 점이다.
Realize 25에서는 2025회계연도 매출 6,500억 엔, 영업이익 1,000억 엔, 영업이익률 15.4%, ROE와 ROIC 각각 15% 이상을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 2026년 2월 결산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7% 감소한 473억 엔에 그쳤다. 당초 목표와는 큰 차이가 났다.
새 경영 계획 Dash 35에서도 매출 6,500억 엔, 영업이익 1,000억 엔, 영업이익률 15.4%라는 목표 자체는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사실상 달성 시점을 4년 뒤로 미룬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반면 ROE와 ROIC 목표는 각각 12% 이상, 11% 이상으로 낮아졌다. 이전 목표였던 15% 이상보다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다.
재무 상태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자기자본비율은 59.5%로 높은 편이며, 배당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 제시됐다. 무리한 확장이라기보다 재무 여력 안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시도하는 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과거에도 의욕적인 목표를 내세웠지만 달성하지 못한 전례가 있다. 이번 1,200억 엔 규모의 전략 투자가 계획대로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시장이 신중하게 지켜볼 가능성이 큰 이유다.
피지컬 AI 시대, 일본 제조업의 다음 과제
노동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 제조업에 피지컬 AI는 큰 기회다. 동시에 글로벌 개발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일이기도 하다.
야스카와전기의 1,200억 엔 전략 투자는 화낙을 비롯한 경쟁사와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기업들 사이에서 자사의 기술 경쟁력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경영 판단으로 볼 수 있다.
성패는 앞으로 몇 년 동안 MOTOMAN NEXT를 비롯한 AI 로봇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쓰이고, 그것이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향후 실적 발표 설명회와 2027회계연도 이후의 진행 상황은 이번 계획의 현실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