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주요 투자자와 제약기업이 ‘론제비티’로 불리는 장수 산업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특정 보충제가 효과가 있는지 여부가 아니다. 핵심은 각국 규제당국이 노화라는 현상을 법적·의학적으로 어떻게 정의하느냐다.
이유는 분명하다. 노화가 치료 대상이 되는 질병으로 인정되는지에 따라 수조 엔 규모의 자금 흐름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화 연구와 론제비티 산업의 향방은 결국 FDA와 WHO 같은 규제기관의 판단에 크게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왜 '노화 치료제'는 존재하지 않는가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 FDA를 비롯한 주요 규제당국 대부분은 노화 자체를 독립적인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 전체를 묶는 근본적인 장벽이다.
의약품 승인은 특정 질병에 대한 효과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노화에 질병이라는 공식적인 이름표가 붙지 않는 한, 노화를 표적으로 한 의약품 개발이나 임상시험에는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기 어렵다.
보험 적용 대상도 되기 어렵기 때문에 대형 제약사가 수천억 원 규모의 개발비를 투입하기도 쉽지 않다.
노화를 치료한다는 구상은 매력적이지만, 이를 사업으로 성립시키는 법적 기반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 지난 10년 동안의 현실이다.
규제의 벽에 구멍을 내려는 TAME 시험
이 구조를 바꾸려는 대표적인 시도가 미국노화연구연맹이 주도하는 TAME 시험이다. TAME은 메트포르민으로 노화를 표적으로 삼는 임상시험을 뜻한다.
TAME 시험 설계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대의 니르 바르질라이 교수 등이 중심이 돼 마련했다. 60년 이상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며 안전성이 축적된 메트포르민을 활용해, 65~79세 비당뇨병 환자 3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계획이다.
목표는 심장질환, 암, 치매, 사망 등 여러 노화 관련 질환의 발생을 동시에 늦출 수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다. 시험은 6년 계획으로 미국 내 14개 거점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형태로 설계됐다.
TAME 시험의 본질적 목적은 단순히 약효를 증명하는 것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목표는 노화를 표적으로 한 임상시험 설계를 FDA에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선례를 만드는 데 있다.
실제로 미국노화연구연맹 측 설명에 따르면 FDA는 이미 이 시험 설계의 기본 개념에는 동의한 상태다. 노화와 관련된 여러 질환을 동시에 평가 지표로 삼는 방식의 틀은 마련돼 있다는 의미다.
다만 2026년 시점에서 TAME 시험은 본격 시행에 필요한 자금을 완전히 확보하지 못했다. 노화를 늦추는 효과를 입증한 결과도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이는 낙관적인 보도에서 자주 간과되는 중요한 사실이다.
한편 대형 제약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르질라이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일라이릴리가 GLP-1 작용제를 활용한 TAME형 시험을 계획하고 있으며, FDA와 필요한 입증 내용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TAME 시험이 만들려 한 길을 대형 제약사가 실제로 걷기 시작한 셈이다.
노화 연구를 진행하는 국립대 교수는 “TAME 시험의 의미는 약 그 자체보다 심사 방식의 틀을 만드는 데 있다”며 “이 틀이 하나 만들어지면 후발 기업은 같은 기준 위에서 경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규제의 원형을 개발한다는 점에서 TAME 시험은 노화 연구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움직이기 시작한 거대 자본
규제 장벽이 남아 있음에도 선제적으로 자금을 투입하는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칙령으로 설립된 정부계 비영리단체 헤볼루션 파운데이션이다. 이 단체는 연간 최대 10억 달러, 약 1500억 엔 규모의 예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립 이후 약 2년 동안 노화 연구 분야에 누적 약 4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이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 자금 제공자로 꼽힌다.
헤볼루션 파운데이션은 XPRIZE와 함께 총액 1억 달러를 넘는 건강수명 관련 경진대회를 주최하고 있다. 기초연구 지원뿐 아니라 신약 개발 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까지 진행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 단체의 최고경영자 마흐무드 칸은 노화 연구 투자를 지금까지 매우 과소평가돼온 분야로 규정하고, 자금 투입을 통해 이 분야의 잠재력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테크 업계 자금도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OpenAI의 샘 올트먼은 노화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부분적 리프로그래밍 기술 등을 연구하는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스에 초기 1억8000만 달러를 단독 투자했다.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스는 2026년에 들어 알츠하이머병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시작했고, 추가 대규모 자금 조달도 추진하며 사업을 진전시키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 등이 투자하고 2022년 30억 달러 규모로 출범한 알토스 랩스 역시 세포 젊어짐 기술을 추구하고 있다. 두 회사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업가치를 가진 유력 후보로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 투자자에게 공통되는 것은 규제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부터 지식재산, 인재, 임상 데이터를 선점하려는 전략이다.
규제당국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 곧바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체제를 먼저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WHO와 ICD-11을 둘러싼 논쟁
규제 흐름을 가늠하는 또 다른 핵심 지표는 세계보건기구 WHO가 정하는 국제질병분류 ICD-11에서 노화가 어떻게 다뤄지는지다.
WHO는 2019년 ICD-11에서 노화와 관련된 코드인 MG2A를 승인하는 방향을 보였다. 당시 명칭은 노령이었다.
그러나 국제노년의학회 등 전문가 그룹은 노화를 일률적으로 질병으로 규정할 경우 고령자에 대한 편견이나 돌봄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하게 우려했다. 이에 따라 WHO는 정식 운용 과정에서 명칭을 가령에 따른 내적 능력 저하로 수정했다.
현재 ICD-11에서는 이 MG2A 코드에 더해, 노화를 원인으로 연결하는 확장 코드 XT9T가 함께 존재한다. 즉 노화를 측정 가능한 의학적 소견으로 다루는 틀은 제한적이지만 이미 마련돼 있다.
정확히 말하면 WHO가 노화 자체를 하나의 독립 질병으로 전면 인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노화에 따른 기능 저하를 의학적 개입 대상으로 설명할 여지는 이미 만들어졌다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앞서의 국립대 교수는 “WHO가 노화는 곧 질병이라고 단순히 정의하는 데 대해서는 앞으로도 신중론이 강하게 남을 것”이라며 “실무적으로 중요한 것은 ICD-11처럼 노화의 과정을 측정 가능한 방식으로 코드화하고, 여기에 보험 보상이나 임상시험 설계를 연결해가는 점진적 접근”이라고 말했다.
시장화의 경계선에 선 노화 연구
노화 연구를 둘러싼 흐름을 보면, 규제당국이 명확한 허가 신호를 내기 전부터 거대 자본과 대형 제약사가 이미 시장의 윤곽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구도가 드러난다.
TAME 시험이 FDA와의 논의를 통해 마련하려 한 심사 방식의 틀, 일라이릴리 같은 대형 제약사의 진입, 헤볼루션 파운데이션 같은 국가 규모 자금, WHO의 ICD-11을 둘러싼 점진적 제도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각각은 개별적으로 보면 조용한 변화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흐름이 쌓이면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에서 관리 가능한 의료·투자 대상으로 이동하게 된다.
물론 이 전환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TAME 시험이 여전히 자금 부족으로 본격 실시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변화가 아직 초기 단계임을 보여준다.
노화를 질병으로 인정하는 데 따른 윤리적·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크다. WHO가 명칭과 분류를 조정해온 과정 역시 이런 신중함을 보여준다.
주목해야 할 것은 거액 투자 뉴스의 화려함만이 아니다. 규제의 틀이 어디까지 굳어졌는지가 이 산업의 실질적인 진행 속도를 판단하는 더 확실한 기준이다.
노화가 시장화되는 경계선 위에 세계는 지금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