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 탐사를 목표로하는 스타트업 아이스페이스(ispace)가 지난 8일 도쿄에서 열린 국제 우주 비즈니스 콘퍼런스 ‘스페이스타이드 2026’에서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와의 사업 제휴를 발표했다.
아이스페이스는 스페이스X가 개발 중인 초대형 로켓 ‘스타십’의 달 탐사 임무에 실을 수 있는 화물 공간 500㎏을 5000만달러, 약 81억엔에 한꺼번에 확보했다.
이후 달에 화물을 보내려는 세계 각국의 중소 고객에게 이 공간을 나눠 판매할 계획이다.
언뜻 보면 세계 우주개발을 이끄는 스페이스X와 두 차례 달 착륙에 실패한 아이스페이스가 맺은 일방적인 관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같은 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하카마다 다케시 아이스페이스 최고경영자(CEO)는 뜻밖의 사실을 공개했다. 이 사업 모델을 먼저 제안한 곳이 스페이스X였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으로 평가받는 우주기업은 왜 스타트업의 도움이 필요했을까.
여기에는 자체 개발만을 고집하지 않고 ‘달 표면 물류 사업자’로 방향을 튼 아이스페이스의 생존 전략과 거대 기업 스페이스X가 안고 있는 예상 밖의 약점이 숨어 있다.
누구나 놀란 ‘스페이스X의 제안’
스타십은 화물을 가득 실었을 때 100톤급의 운송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사상 최대 규모의 로켓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유인 달 탐사 계획인 ‘아르테미스’에서도 2028년 전후로 예정된 유인 달 착륙 임무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금력과 기술력 모두에서 세계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기업이 달 착륙에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스타트업에 먼저 손을 내밀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이스페이스는 이전부터 스페이스X와 관계를 쌓아왔다. 2018년 일본 우주 스타트업 최초로 팰컨9 로켓 발사 계약을 체결했고, 2023년과 2025년 진행한 두 차례 달 착륙 임무에도 팰컨9을 이용했다.
착륙 자체에는 실패했지만 발사 이후 달 궤도에 도달하기까지의 유도 및 자세 제어 능력은 입증했다.
그동안 축적한 실무상 신뢰가 이번 계약을 일회성 거래에 그치지 않고 스페이스X의 선제적인 제안으로 이어지게 한 기반으로 볼 수 있다.
자체 개발에서 벗어난 아이스페이스, ‘제조사’에서 ‘달 운송 통합 사업자’로
아이스페이스는 그동안 자체 개발한 달 착륙선 ‘울트라(ULTRA)’를 이용한 달 표면 운송을 핵심 사업으로 삼아왔다. 울트라의 최대 적재량은 200㎏이다.
그러나 달 착륙에는 실패 위험과 막대한 비용이 따른다.
실제로 아이스페이스는 2027년 3월 결산 회계연도에 연결 기준 130억엔의 순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보조금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수익원을 다각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제휴를 통해 아이스페이스가 확보한 적재 공간은 울트라의 2.5배인 500㎏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실패 위험이 가장 큰 ‘달까지의 비행’을 스타십에 맡겼다는 것이다.
아이스페이스는 착륙 전에 고객들의 화물을 한데 모아 품질을 관리하고, 착륙 후에는 자체 개발할 신형 차량 ‘모바일 카고 시스템(MCS)’을 이용해 화물을 목적지까지 운반하는 최종 구간의 운영에 집중한다.
아이스페이스는 자체 착륙선을 고부가가치의 ‘택시’, 스타십을 이용한 운송편을 대용량·저비용의 ‘버스’로 규정했다. 두 가지 운송 수단을 병행하는 전략이다.
자체 개발에만 의존할 때 발생하는 위험을 외부 기반 시설을 이용해 분산하려는 합리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정보통신과 우주공학 분야에 정통한 공학박사 오카자키 다이스케는 “많은 우주 스타트업이 자체 로켓과 착륙선 개발 경쟁에 자금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막대한 개발비와 높은 실패 위험을 고려하면 다른 기업의 대규모 기반 시설에 함께 탑승해 수수료를 받는 사업 모델도 안정적인 수익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달 착륙처럼 위험이 극도로 큰 분야에서는 운송 자체를 다른 회사에 맡기고, 자사는 부가가치가 높은 운영 서비스에 집중하는 ‘자산 경량화’가 타당한 경영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스페이스X가 필요로 했던 ‘최종 운송’과 소규모 고객 대응력
스페이스X에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스타십은 압도적인 운송 능력을 갖췄지만, 수십에서 수백㎏ 규모의 실험 장비를 운송하려는 정부기관과 연구기관, 민간기업을 일일이 상대로 영업하고 개별 요구를 조율하는 데 필요한 경험과 인력에는 한계가 있다.
스페이스X의 상업 판매 담당 부사장 스테파니 베드나렉도 발표 자료를 통해 아이스페이스의 통합 서비스가 소형 화물이 달로 향할 기회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통로가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아이스페이스는 일본과 미국, 룩셈부르크에 거점을 두고 있으며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진출했다. 세계 각국에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영업망을 갖춘 셈이다.
착륙 후 화물을 분류하고 발전 설비나 통신 기반 시설 등 달 표면의 다른 시설까지 운반하는 최종 구간의 운영 경험도 쌓아왔다.
스타십이라는 ‘대형 버스’의 빈자리를 실제 수요가 있는 소규모 고객으로 채우고, 달 표면에서 화물을 내리는 작업까지 대신해주는 아이스페이스는 스페이스X에 합리적인 협력 상대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제휴는 독점 계약이 아니다. 미국의 달 탐사 차량 스타트업 아스트로랩도 이미 스타십의 향후 운항편에 적재 공간을 확보했다. 아이스페이스가 유일한 창구는 아니라는 뜻이다.
스페이스X가 향후 최종 고객과 직접 거래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바꾸면 중개 사업자인 아이스페이스의 역할이 축소될 위험도 있다.
첨단기술 스타트업의 생존법, ‘틈새시장 전략’
막대한 자본을 보유한 해외 기업과 기술력이나 자금력으로 정면 승부해 이기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거대 기업이 직접 맡기를 꺼리는 번거롭지만 꼭 필요한 기능을 선점하면 대등한 수준에 가까운 위치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이스페이스가 겪은 두 차례의 달 착륙 실패도 단순한 좌절만은 아니었다. 발사 이후 달 궤도에 이르기까지 확보한 유도·제어 자료와 세계 각국의 고객을 상대하면서 축적한 실무 경험은 다른 기업이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자산이 됐다.
오카자키 박사는 “스타트업이 대기업의 공급망에 진입할 때 가장 지속 가능한 방식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대기업이 맡고 싶어 하지 않지만 고객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번거로운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이스페이스 사례는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축적한 운영 실적이 결과적으로 기술력과는 다른 형태의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사업 모델이 최종적으로 성공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스타십은 지금까지 12차례 시험비행을 했지만 모두 준궤도 시험에 머물렀다. 달 착륙을 포함한 본격적인 상업 운항 실적은 아직 없다.
아이스페이스의 수익 창출 여부도 첫 운항이 예정된 2030년 전후까지 제3자 화물 주문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위험 부담이 큰 자체 착륙선 개발을 계속하면서 외부의 거대한 기반 시설도 활용하는 전략이다.
이 같은 영리한 양면 전략이 효과를 거둘지는 일본 우주산업뿐만 아니라 해외 거대 기업과 맞서야 하는 여러 분야의 기업에도 주목할 만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