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차가 끝난 심야 시간, 철로 위에 올라 육안과 경험으로 레일 변형이나 낙석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
오랜 기간 철도 안전은 이처럼 시설관리원의 숙련된 기술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와 자연재해 증가라는 두 가지 변화가 기존 철도 유지보수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흔들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JR서일본과 NTT서일본은 통신용 광섬유를 진동 센서로 활용하는 ‘광섬유 센싱 기술’ 공동 검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미 철도 주변에 설치된 통신용 광케이블을 그대로 상태 감시 센서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기존 광케이블은 역 신호 시스템에 운행 정보와 제어 데이터를 전달하기 위해 설치돼 있다.
JR서일본이 관리하는 노선 길이는 약 4900km에 달하며, 이 가운데 약 절반 구간에는 이미 해당 통신용 광섬유가 구축돼 있다.
양사는 우선 효과가 기대되는 노선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2030년대 초반 실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광섬유 센싱 기술이란
광섬유 센싱 기술은 광케이블에 빛을 보내고, 되돌아오는 빛의 미세한 변화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지면 진동, 온도 변화, 구조물 변형 등이 발생하면 광섬유를 통과하는 빛의 반사 패턴이 해당 위치에서 조금씩 달라진다.
이 변화를 하나의 센싱 장치로 분석하면 수십km 범위에서 어디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광섬유 자체를 ‘긴 청진기’처럼 활용하는 기술이다.
광섬유를 통해 전달되는 진동 변화를 분석해 이상 발생 위치와 종류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물리적으로 시설에 직접 접촉하지 않고도 이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 시설관리원이 위험한 장소에 접근하는 횟수를 줄이고 점검 작업의 안전성도 높일 수 있다.
양사는 먼저 열차 위치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기초 연구를 진행해 높은 정확도로 위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검증했다.
앞으로는 낙석, 쓰러진 나무, 동물 침입, 구조물 및 설비 이상 진동 감지 등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연구 성과는 2025년 11월 26일부터 지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열린 ‘철도기술전 2025’에서도 소개됐다.
JR서일본의 목표… 기존 설비 활용한 광역 감시 체계
JR서일본 구라사카 쇼지 사장은 이번 기술 개발과 관련해 노동 인구 감소와 자연재해 증가가 철도 운영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며, “사람의 노동력에 의존하지 않는 지속 가능한 철도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이번 기술의 가장 큰 특징은 철도 주변에 새로운 센서와 카메라를 대규모로 설치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이미 구축된 통신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하기 때문에 신규 설비 투자 비용을 줄이면서 넓은 지역을 정밀하게 상시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 양사의 설명이다.
특히 지방 노선 유지 비용이 경영 부담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점검 작업의 효율화와 자동화는 많은 철도 사업자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 해결책을 찾는 하나의 사례가 될 전망이다.
NTT서일본의 목표… 통신 인프라에 새로운 가치 부여
NTT서일본에게도 이번 사업은 기존 기술 자산의 활용 범위를 넓힐 기회다.
회사는 광섬유 센싱 기술을 철도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현장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24년 9월에는 IOWN 올포토닉스 네트워크를 활용한 광역 교통 흐름 모니터링 실증 결과도 발표했다.
이번 JR서일본과의 공동 검증 역시 이러한 기술 확장의 연장선에 있다.
유선전화와 INS 네트워크 등 기존 통신 서비스 시장이 구조적으로 축소되는 가운데, 통신 사업자에게 기존 광섬유망의 새로운 활용처를 찾는 것은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향후 어떤 과금 방식과 사업 모델을 구축할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속적인 감시·운영 서비스로 발전할 경우 장기적인 사업 기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철도 밖으로 확장 가능성… 실용화까지 과제도 남아
이번 발표는 어디까지나 ‘공동 검증 본격화’ 단계다.
실제 적용은 JR서일본 일부 노선에서 2030년대 초반을 목표로 하고 있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오탐과 미탐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터널·경사 구간·전철 구간 등 철도 특유의 환경에서 이상 판단 알고리즘을 어떻게 최적화할지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다만 NTT서일본이 목표로 하는 다양한 분야 적용 가능성을 고려하면, 도로 주변 광케이블을 활용한 노면 이상 감지, 송전선과 파이프라인 등 주요 인프라 감시 분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는 현재 기술 발전 방향에서 예상되는 활용 가능성이며, 양사가 구체적인 사업 계획으로 발표한 내용은 아니다.
교통정책연구소 이와타 도시마사 연구원은 “시설관리 분야 기술 혁신에서는 센서 자체의 정확도뿐 아니라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기술은 신규 설비 비용 없이 넓은 지역 감시를 구현하려는 점에서 합리적인 접근”이라며 “실용화를 위해서는 철도 특유의 소음 환경에서 감지 정확도를 검증하고 기존 유지보수 체계와 통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프라 관리 인력 부족은 철도뿐 아니라 사회 기반 시설 전반이 직면한 공통 과제다.
JR서일본과 NTT서일본의 이번 시도는 ‘땅속에 잠들어 있던 통신 인프라’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사례다.
실제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기존 자산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한다는 발상은 앞으로 다양한 산업의 인프라 유지 전략에도 참고 사례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