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AI의 발전을 이끌어온 것은 엔비디아 GPU 성능 향상이라는 ‘디지털 기술 경쟁’이었다. 하지만 2026년 들어 그 중심축이 조용히 바뀌고 있다.
엔비디아의 최신 GPU 플랫폼 ‘GB200 NVL72’급 구성에서는 랙 1대당 소비전력이 100kW를 넘어서는 수준에 도달했다.
업계 전력 밀도 분석에 따르면 120kW급 랙은 기존 공랭 방식으로는 사실상 냉각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평가된다.
과거 일반 기업용 서버 랙의 소비전력이 약 5~10kW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AI 전용 랙은 10배 이상의 열을 발생시키는 셈이다.
AI 인프라의 경쟁 무대는 이제 ‘반도체를 얼마나 빠르게 만들 것인가’에서 ‘그 반도체를 어떻게 냉각하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주목받는 기업이 일본 중공업의 대표주자인 미쓰비시중공업이다.
엔비디아가 주목하는 미쓰비시중공업의 ‘극한 열 제어’ 기술
일본경제신문은 2026년 7월 14일 엔비디아와 미쓰비시중공업이 AI 데이터센터용 냉각 및 에너지 관리 기술 분야에서 협력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 이후 미쓰비시중공업 주가는 15일 도쿄 시장에서 한때 전 거래일 대비 2.9% 상승하며 시장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다만 현재 양사의 협의는 검토 단계이며, 구체적인 협력 내용이나 투자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가 전 세계에서 구축 중인 차세대 거점 ‘AI 팩토리’에 미쓰비시중공업의 냉각 시스템과 비상 전원 등 에너지 관리 기술을 적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로켓 엔진과 가스터빈 개발을 통해 수천 도에 달하는 극한 환경에서 열과 유체를 제어하는 기술을 오랜 기간 축적해왔다.
단순한 냉각 장비 업체와는 차별화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기술력은 실제 제품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2026년 3월 북미 차세대 AI 데이터센터용으로 설계한 10MW급 원심 냉동기를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회사는 미국 안전 인증(UL 등)을 조기에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일본 원심 냉동기 시장에서 약 60%로 평가되는 높은 점유율을 북미 진출 기반으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또 같은 해 7월에는 후지쓰 아카시 데이터센터에서 진행한 냉각 최적화 실증 시험 결과, 냉각 시스템 에너지 사용량을 2.3% 줄였다고 발표했다.
전체 서버룸에 적용할 경우 최대 7.6%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
‘냉각 기술’이 실제 에너지 절감 효과로 수치화되기 시작하면서, 관련 기술이 단순한 기대 단계에서 실제 검증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애널리스트 이와이 유스케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판단에서 냉각 효율은 더 이상 단순한 비용 항목이 아니라 경쟁력 그 자체가 됐다”며 “수% 수준의 전력 절감도 대규모 시설에서는 연간 수백억 규모의 운영비 차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그리는 에너지 관리 시장
미쓰비시중공업의 강점은 냉각 장비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회사는 데이터센터용 가스터빈 등 비상·현장 발전 시스템과 이를 통합 관리하는 디지털 제어 기술을 함께 보유한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냉각·전력·제어 시스템을 한 번에 제공할 수 있다면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공급망을 단순화하면서 시설 전체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중공업 기업들에게 ‘설비를 판매하는 사업’에서 ‘에너지 운영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고수익 서비스 사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 붐이 끝난 이후에도 유지보수와 운영 단계에서 지속적인 수익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수주 중심 사업에서 벗어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냉각 기술 강국' 일본의 부활
미쓰비시중공업의 움직임은 일본 제조업이 가진 ‘열과 유체를 제어하는 기술’이 AI 인프라 분야에서 다시 평가받는 흐름의 일부다.
세계적인 공조 기업 다이킨공업은 2023년 미국 얼라이언스 에어 인수를 시작으로, 2025년 9월 다이내믹 데이터센터 솔루션즈, 같은 해 11월에는 부압식 직접 칩 냉각 기술을 보유한 미국 칠다인을 잇달아 인수했다.
이를 통해 대형 공간 냉각, 서버 냉각, 칩 직접 냉각을 통합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다이킨은 북미 데이터센터 냉각 사업 매출을 2023년도 약 230억엔에서 2025년도 약 1000억엔, 2030년도에는 3000억엔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 자체 개발한 불소계 냉각액 ‘DAISAVE’는 액침 냉각과 2상 직접 액체 냉각용 소재로 활용되며, 화학 소재 측면에서도 액체 냉각 인프라를 지원하고 있다.
니덱은 모터와 HDD용 정밀 가공 기술을 기반으로 냉각액 분배 장치(CDU)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 세계 시장 점유율은 약 50% 수준으로 평가되며, 태국 공장의 CDU 생산 라인은 월 200대에서 2000대 규모로 확대됐다.
또 2027년 1분기 양산을 목표로 최대 300kW급 차세대 ‘인랙 CDU(In-Rack CDU)’ 프로토타입도 개발하는 등 생산 능력과 제품 성능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반도체 자체를 만드는 경쟁에서는 뒤처졌던 일본 제조업이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작동시키는 ‘열·전력 인프라’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24년 약 415TWh에서 2030년 약 945TWh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AI 시대를 뒷받침하는 인프라 시장 자체가 구조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투자자가 주목하는 ‘곡괭이를 파는 기업’ 전략
19세기 미국 골드러시 당시 실제 금을 찾아 큰돈을 번 사람은 극히 일부였지만, 채굴 장비와 청바지를 판매한 기업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올렸다는 이야기는 신흥 산업 투자 비유로 자주 활용된다.
AI 인프라에서도 GPU라는 ‘금맥’ 자체뿐 아니라 이를 냉각하고 전력을 공급하는 ‘도구’를 제공하는 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델오로 그룹은 AI 도입 확대를 배경으로 데이터센터용 액체 냉각 시장 매출이 2029년까지 약 70억달러(약 10조 4,370억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엔비디아와 미쓰비시중공업의 협력 검토는 이러한 큰 흐름 속 하나의 사례다.
실제 최종 협력 체결 여부는 향후 발표를 지켜봐야 하지만, AI 반도체 성능 향상이 계속되는 한 이를 지원하는 냉각·전력 인프라 수요가 구조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은 여러 시장 분석과 기업 투자 계획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와이는 “칩 세대교체 속도는 앞으로도 빠르겠지만 데이터센터라는 건물과 전력·냉각 설비는 수년에서 수십 년 동안 사용하는 자산”이라며 “이 분야의 기술력과 공급망을 가진 기업은 AI 열풍의 단기 변동에 덜 흔들리는 장기 성장 기회를 얻기 쉽다”고 말했다.
반도체 제조라는 핵심 경쟁에서 경쟁력을 잃었던 일본 제조업에게 ‘열과 전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라는 물리 인프라 영역은 100년 이상 축적한 중공업·화학·정밀기계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무대가 되고 있다.
엔비디아와 미쓰비시중공업의 협력 검토를 계기로 이 분야에 대한 시장과 투자자의 관심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