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국토교통성이 역과 버스정류장 같은 도시 인프라에 태양광 패널 설치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흔한 친환경 탈탄소 정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문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버스정류장 지붕처럼 작은 면적에서 얼마나 많은 전기를 만들 수 있을까. 패널 점검과 청소 비용까지 고려하면, 단독 사업으로서의 투자 효율이 좋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일본 국토교통성 도로국이 제시한 기술 지침에도 패널 붕괴와 낙하, 오염 방지 대책, 유지관리 작업에 미치는 영향 등 일반적인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와는 다른 제약이 나열돼 있다.
효율만 놓고 보면 산간 지역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역, 버스정류장, 도로 같은 작은 도시 인프라에 주목하는 데에는 단순한 환경 대책을 넘어선 두 가지 긴박한 이유가 있다.
하나는 전력망이 이미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다. 다른 하나는 대형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는 안전보장 차원의 요구다.
왜 산속이 아니라 역과 버스정류장인가
재생에너지 도입이 늘어나면서 일본 곳곳에서는 태양광 발전의 출력제어가 일상화되고 있다. 출력제어는 전기가 너무 많이 생산될 때 발전량을 줄이도록 하는 조치다.
일본 자원에너지청에 따르면 2023년도 출력제어량은 18억kWh를 넘어섰다. 2025년도에도 20억kWh를 넘는 높은 수준이 이어질 전망이다.
규슈전력 관할 지역에서는 이미 출력제어율이 6~8%대에 이르렀고, 2025년도에는 도쿄전력 관할 지역을 포함한 일본 전역에서 출력제어가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배경에는 지방에서 생산한 전기를 소비지로 보내는 송전선과 지역 간 연계선의 용량 부족이 있다.
홋카이도와 혼슈, 도호쿠와 도쿄를 잇는 연계선 증강과 운영 방식 개선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대규모 확충은 2030년 전후까지 단계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즉, 전기를 만들어도 보낼 수 없는 물리적 한계가 재생에너지 확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문제를 피하는 현실적인 방법이 바로 소비지 근처에서 전기를 만들고 그 자리에서 쓰는 방식이다. 지역 생산·지역 소비형 전원, 또는 전력망 의존도를 낮춘 분산형 전원이다.
일본 국토교통성 검토회는 역 건물, 승강장, 고가교 방음벽 등 철도 시설을 활용한 재생에너지 잠재량을 일본 전역에서 약 0.5GW로 추산했다.
전력망을 거치지 않는 소규모 분산 전원을 도시 인프라 곳곳에 배치하는 방식이 전력망 제약을 우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 되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이유는 방재와 사업 지속성, 즉 BCP 관점이다.
대지진이나 인프라 피해로 광역 정전이 발생했을 때 대규모 발전소에서 보내는 전기에만 의존하는 도시는 쉽게 기능을 잃는다.
이미 미야기현 히가시마쓰시마시는 태양광과 배터리를 결합한 방재형 마이크로그리드를 운영하고 있다. 정전 시에도 병원과 대피소에 72시간 동안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일본 환경성의 태양광 발전 가이드라인도 전력망에서 분리해 독립 운전할 수 있는 설비라면, 재난 시 스마트폰 충전이나 전기차 급전 거점으로 지역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역과 버스정류장처럼 시민의 생활 동선에 배터리를 갖춘 독립 전원을 넓게 배치해두는 것은 대규모 정전 시 도시 곳곳에 작은 대피 거점을 만들어두는 전략과 같다.
이는 단순한 친환경 정책이 아니라 재난 대응 인프라를 미리 깔아두는 안전보장 차원의 판단으로 볼 수 있다.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
기존 실리콘 태양광 패널을 그대로 버스정류장 지붕에 올리면 문제가 생긴다.
무게를 버티기 위한 보강 공사가 필요하고, 파손이나 오염이 생겼을 때 점검 비용도 커진다. 재정 여력이 부족한 지방 교통사업자에게는 쉽게 적자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 자료에서도 역 건물 지붕 보강이 태양광 설비 도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경제적 장벽을 낮추기 위해 일본 정부가 주목하는 것은 차세대 태양전지와 새로운 사업 모델이다.
단순히 전기를 팔아 수익을 내는 방식이 아니라, 방재 인프라로서의 가치와 전자 광고판 전원으로서의 가치를 함께 쌓아 투자 회수 가능성을 높이려는 구상이다.
에너지 정책 연구가 사에키 도시야는 “역과 버스정류장의 태양광 설비 도입은 발전 사업 하나만 놓고 수익성을 따질 수 없다”며 “방재 인프라로서의 공공 가치, 광고 매체로서의 수익, 전력망 제약 회피라는 여러 이점을 합쳐야 성립하는 사업 모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지방자치단체, 철도사업자, 광고회사, 배터리 제조사가 함께 참여하는 컨소시엄형 사업이 주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수혜가 예상되는 세 가지 산업
첫 번째는 차세대 태양전지와 신소재 업체다.
기존 실리콘 패널은 무겁고 깨지기 쉽다. 구조가 약한 버스정류장 지붕에 설치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여기서 주목받는 것이 가볍고 유연하며 건축 자재와 일체화하기 쉬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5년 9월 세키스이화학공업, 카네카, 파나소닉홀딩스, 에네코트 테크놀로지스, 리코 등 일본 5개사를 대상으로 총 246억 엔 규모의 기술 개발·실증 지원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2040년까지 국내 20GW 도입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세키스이화학공업이다. 이 회사는 2026년 3월 필름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SOLAFIL 판매를 공식 시작하고, 우선 금속 지붕용으로 연간 10MW 규모의 공급에 나섰다.
납품처에는 일본 환경성의 사회 구현 모델 사업에 채택된 지방자치단체와 서일본고속도로 등 도로·인프라 관련 사업자도 포함된다.
세키스이화학공업은 2027년 사카이시 신공장에서 100MW 규모 생산 라인을 가동하고, 2030년에는 GW급 생산 체제 구축을 목표로 한다.
파나소닉홀딩스도 2026년부터 시험 판매에 나설 예정이다. 여기에 중국 GCL 페로브스카이트가 2026년 7월을 목표로 탠덤형 제품을 앞세워 일본 시장에 들어올 전망이어서, 국내외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내구성이 10년 수준, 목표는 20년이며 변환 효율은 15%, 목표는 20%로 실리콘형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다만 원료인 요오드는 일본 지바현이 일본 국내 생산의 약 80%를 차지하고, 세계 시장에서도 일본이 약 30% 점유율을 갖고 있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실리콘형 공급망과 달리 국내 조달이 가능하다는 점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큰 강점이다.
두 번째는 옥외 광고와 디지털 사이니지 업계다.
그동안 전원 확보와 전기요금이 부담이었던 야외 소규모 공간에도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전자 광고판을 설치하기 쉬워진다.
실제로 도쿄도와 리코는 공동으로 도청사와 오다이바 해변공원에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적용한 정원등을 설치하는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평상시에는 정보 전달 수단으로 쓰고, 재난 시에는 방재 정보 안내로 전환하는 식의 다기능 활용 사례도 나오고 있다.
역과 버스정류장의 태양광 설비 도입이 확대되면, 평소에는 광고 수익을 내고 재난 시에는 방재 안내판 역할을 하는 전자 표지판이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 광고회사와 디스플레이 제조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다만 내구성과 비용 문제 때문에 본격적인 보급은 2030년 전후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지나친 기대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중소형 배터리와 VPP 제어 시스템이다.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그 자리에서 저장해 밤이나 재난 시 활용하려면 산업용 중소형 배터리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 중요한 것이 VPP, 즉 가상발전소다. 곳곳에 흩어진 소규모 발전·저장 시설을 원격으로 통합 관리해 전력 수급 조정에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민간 조사기관 집계에 따르면 일본 국내 VPP·수요반응 지원 시장 규모는 2022년도 42억 엔에서 2023년도 89억 엔으로 커졌다. 전년 대비 208% 성장한 수치다. 2024년도에는 168억 엔으로 전년 대비 188% 성장할 전망이다.
전력 용량시장에서도 전력 수급 조정 능력을 제공하는 사업자에게 연간 1kW당 수천 엔 수준의 대가를 지급하는 구조가 마련되고 있다. 놀고 있던 소규모 배터리를 수익을 내는 자산으로 바꿀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NEC, 도호쿠전력, 소프트뱅크 계열 SB에너지 등 전력회사와 IT기업의 이종업종 진입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역과 버스정류장이 작은 발전소처럼 늘어나면, VPP 사업자에게도 새로운 전력 자원 공급원이 될 수 있다.
도시 인프라가 바뀌고 있다는 관점
버스정류장에 태양광 패널을 올려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냉소적으로 보는 기업은 이번 구조 변화를 놓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니다. 전력망의 한계와 재난 대비라는 요구가 맞물리며 도시 인프라의 역할 자체가 바뀌고 있는 흐름이다.
일본 국토교통성과 경제산업성이 제시하는 숫자를 보면 정책 추진 의지는 분명하다. 앞으로 몇 년 사이 관련 예산과 민간 자금이 흘러들 가능성도 작지 않다.
물론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내구성 개선과 양산 비용 절감, 디지털 사이니지의 본격 보급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실증 단계 기술에 성급하게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며,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전력망 한계와 방재라는 두 가지 구조적 요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공급망에 참여할 가치는 충분하다. 버스정류장과 역의 태양광 설비는 작아 보이지만, 그 뒤에는 전력망, 재난 대응, 광고, 배터리, 차세대 태양전지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더 큰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