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tGPT 등장 이후 몇 년 사이 생성 AI는 일과 생활 속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지금 AI 업계 최전선에서 경영진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알고리즘의 정확도도, 반도체 성능도 아니다. 전기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일본 5대 종합상사 중 하나인 마루베니는 6월 17일 미국 텍사스주 바넷 셰일 지층에서 천연가스에 대한 권리를 보유한 EagleRidge Energy II LLC를 완전 자회사화했다고 발표했다.
마루베니는 텍사스주에 있는 바넷 셰일 지층에서 천연가스 권익을 보유하고 개발, 생산, 판매 등을 하는 EagleRidge의 지분 전부를 취득했다.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투자액은 수백억 엔 규모로 보이며, AI 보급으로 늘어나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겨냥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겉으로 보기에는 AI 시대와 반대 방향처럼 보이는 화석연료 투자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AI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과제와, 이를 내다본 종합상사의 장기 전략이 담겨 있다.
AI는 전력의 '대식가'다
생성 AI의 전력 소비량은 기존 인터넷 서비스와 차원이 다르다.
여러 추산에 따르면 ChatGPT는 질문 한 번에 약 2.9Wh의 전력을 소비한다. 이는 일반적인 구글 검색 한 번의 전력 소비량인 약 0.3Wh의 약 10배에 해당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차이가 쌓이면서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26년에는 2022년의 2.2배인 약 1000TWh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일본의 연간 총전력 소비량에 맞먹는 규모다.
장기적으로는 2034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전 세계적으로 1580TWh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인도 전체 에너지 수요에 가까운 수준이다.
문제는 수요 급증을 공급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블룸에너지가 2026년 1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AI용 고밀도 랙은 기존 클라우드 서버보다 몇 배에서 십수 배의 전력을 소비한다. 많은 지역에서는 신규 데이터센터의 전력망 연결을 위해 수년 단위 대기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에서도 계획과 현실의 차이가 뚜렷해지고 있다.
조사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2026년 미국에서 계획된 약 140개 프로젝트, 16GW 규모 가운데 실제 착공한 것은 약 31%, 5GW에 그쳤다. 나머지 대부분은 발표 단계에 머물러 공사조차 시작하지 못한 상태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메타 등 4개사가 총 6000억 달러가 넘는 대규모 투자를 예고했지만, 전력망 연결 대기, 변압기 부족, 인허가 지연 같은 물리적 제약이 건설을 막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
대형 기술기업들은 오랫동안 탄소중립을 내걸고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려왔다. 이 방향 자체는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24시간 365일 멈출 수 없는 데이터센터 전원으로, 재생에너지만으로 모든 수요를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때문에 최근 기술기업과 에너지기업이 잇따라 선택하고 있는 것이 천연가스 화력발전이다.
미국 석유 대기업 셰브런은 2027년 말까지 총 발전용량 4GW 규모의 가스 화력발전 시설을 미국 남동부, 중서부, 서부 지역에 건설해 전력망을 거치지 않고 데이터센터에 직접 전력을 공급하는 계획을 내놨다.
전력 대기업 넥스트에라와 석유 메이저 엑손모빌도 노스다코타주에서 새로운 복합화력 천연가스 발전시설 공동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완공되면 수GW 규모의 데이터센터 캠퍼스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전체로 봐도 이런 흐름은 빨라지고 있다.
미국 발전 인프라를 조사하는 국제 연구기관에 따르면, 세계에서 개발 중인 가스 화력발전 설비 용량은 2025년 31% 늘어 총 1047GW에 달했다. 2026년에는 신규 가스 화력발전 프로젝트가 기록적인 수준에 이를 가능성도 있다.
다만 가스 화력발전 의존이 커질수록 탈탄소 목표와의 충돌은 불가피해진다.
셰브런처럼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을 함께 쓰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원자력, 가스를 어떻게 조합할지는 각 기업과 국가에서 계속 논의되고 있는 쟁점이다.
마루베니의 노림수
이런 시장 환경에서 나온 마루베니의 인수는 단순한 자원 권익 확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마루베니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인수로 천연가스와 천연가스액을 합쳐 하루 약 170MMcfe, LNG로 환산하면 연간 약 130만 톤의 생산 규모를 갖게 된다.
마루베니는 이를 중기 경영전략 ‘GC2027’에 따라 2027년도까지 3년 동안 자원 투자에 2000억 엔을 배분한다는 방침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주목할 점은 마루베니가 단순히 가스전을 보유해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는 미국 내 가스 공급망과 발전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해왔다.
마루베니는 과거에도 미국 뉴저지주의 가스 화력발전 사업에 출자하는 등 북미 전력 가치사슬에 오랫동안 참여한 경험이 있다.
이번 가스전 인수는 자원 개발이라는 상류 부문부터 발전과 공급이라는 하류 부문까지 한 번에 묶는 수직통합 전략의 한 수로 볼 수 있다.
수백억 엔이라는 투자액은 마루베니 규모에서 보면 큰 도박이라기보다 견실한 포트폴리오 확장 범위에 가깝다.
마루베니는 과거에도 미국 셰일가스와 셰일오일 권익을 취득하고 매각하며 자산을 교체해왔다. 이번 인수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경영 판단으로 볼 수 있다.
버핏이 보여준 상사주 평가
이 흐름 속에서 다시 주목되는 것이 투자자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의 일본 5대 종합상사 지분 확대다.
버크셔는 2020년 일본 5대 상사 지분을 각각 5% 넘게 취득한 뒤 보유 비율을 단계적으로 높여왔다.
2025년 8월 기준으로는 각사 지분율이 9~10% 안팎에 이르고, 상사와 손해보험주 보유액은 합계 약 8조 엔에 달한다고 보도됐다.
2026년 3월에는 도쿄해상홀딩스 지분 2.49%, 금액으로는 18억 달러 규모를 취득하는 자본·업무 제휴도 발표하며 일본 사업회사에 대한 관심을 넓히고 있다.
버핏이 왜 상사주를 장기 보유하는지, 이를 곧바로 AI 관련 투자와 연결하는 것은 성급하다. 그러나 두 흐름에는 공통된 논리가 있다.
디지털화와 AI화가 아무리 진행돼도, 그 기반을 떠받치는 것은 천연가스, 광물, 식량 같은 실제 자원과 인프라라는 점이다.
상사는 이런 자원과 수요처를 연결하는 사업 구조를 갖고 있고,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왔다.
버핏은 상사 경영진의 질과 주주환원 자세를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같은 자원 인프라 투자는 그런 평가와도 맞닿아 있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상사주 투자 판단이 AI 관련 전력 수요만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상사 비즈니스는 자원 가격 변동과 환율 위험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투자 판단은 개별 기업의 재무 상황과 시장 환경을 함께 보고 이뤄져야 한다.
AI의 깨끗한 이미지 뒤에 있는 현실
생성 AI는 지적이고 세련된 기술이라는 이미지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실제 기반을 떠받치는 것은 가스전 개발과 발전소 건설 같은 매우 물리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산업 인프라다.
마루베니의 미국 천연가스 회사 인수는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시사점은 분명하다.
탈탄소와 ESG라는 가치는 앞으로도 중요한 주제로 남을 것이다. 동시에 AI 산업의 급성장을 실제로 떠받치는 것이 천연가스와 전력 인프라에 대한 거액 투자라는 현실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상과 실제 수요를 함께 보는 시각이야말로 앞으로의 AI 시대 비즈니스를 읽는 데 필요한 태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