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의 포인트
2026년 1월, 국제적 연구 우수대학으로 인증받은 도쿄과학대학이 약 5,000억엔(약 4조5,450억 원) 규모의 자체 펀드 운용을 목표로 내걸었다. 2004년 이후 명목·실질 교부금이 크게 줄어든 구조적 문제를 배경으로, 하버드 등 미국의 엔다우먼트를 벤치마크해 ‘의공(醫工) 연계 × 투자’의 순환 모델로 일본형 엔다우먼트 수립을 노린다. 이는 일본 고등교육 재정의 전환점을 예고한다.
2026년 1월, 일본 문부과학성은 도쿄과학대학을 ‘국제적 탁월 연구대학’으로 공식 인증했다. 도호쿠대에 이어 두 번째로 선정된 이 대학의 등장은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다. 정부가 조성한 약 10조엔(약 90조9,000억 원) 규모의 ‘대학 펀드’ 지원을 최장 25년간 받을 자격을 얻은 동시에, 대학이 제시한 약 5,000억엔(약 4조5,450억 원) 규모의 자체 펀드 운용 계획은 일본 대학 경영에서 전례 없는 ‘공격적 전환’을 의미한다.
2024년 10월, 도쿄공업대학과 도쿄의과치과대학의 통합으로 출범한 도쿄과학대학은 이공계와 의치학의 경쟁력을 하나의 법인으로 결집했다. 왜 이 대학이 지금 ‘투자자’로서 시장에 나서려 하는가. 그 배경에는 20년 넘게 누적된 국립대의 재정적 한계, 즉 ‘구조적 피로’가 자리하고 있다.
●목차
관에 의존할 수 없는 현실…국립대 재정의 20년
국립대학의 법인화는 2004년 이뤄졌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던 기존 체제에서 벗어나 각 대학이 자체 수지에 가까운 운영을 하게 되면서, 정부가 지급하는 운영비 교부금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문부과학성 자료에 따르면, 2004회계연도 당시 1조2,415억엔(약 11조2,852억 원)이던 교부금은 2024회계연도에 1조784억엔(약 9조8,027억 원)으로 감소했다. 명목상으로 13%가량의 감액이며, 물가상승을 반영한 실질 기준으로는 약 18~20% 줄어든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최근의 물가 상승이 겹치며 상황은 악화됐다. 2024년 6월, 국립대학협회는 재정 상황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고 경고했다. 학생 1인당 교부금은 2004년 약 200만엔(약 1,818만 원)에서 2024년 약 170만엔(약 1,545만3,000원)으로 줄었고, 이는 젊은 연구자의 불안정한 고용 확대와 기초연구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으로 2022회계연도에 출범한 것이 ‘대학 펀드’다. 약 10조엔(약 90조9,000억 원)의 자산을 주식·채권 등으로 운용해 그 이익을 선정된 국제적 탁월 연구대학에 최장 25년간 분배하는 제도다. 연간 운용수익 목표는 약 3,000억엔(약 2조7,270억 원)이며, 2024회계연도 말 현재 펀드 자산은 11조1,056억엔(약 100조9,499억 원)까지 불어났다.
다만 이 지원에는 전제가 붙는다. 각 대학이 ‘자주적 재원 확보’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정부는 ‘지원하되 너희도 벌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벤치마크는 하버드…엔다우먼트라는 운영 모델
일본 대학 관계자들이 가장 자주 참고하는 모델은 미국 최상위 대학들의 엔다우먼트(기부금 기반 펀드)다. 하버드대 펀드는 2024회계연도에 9.6%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운용자산은 532억달러(약 70조9,156억 원)에 달한다. 예일대 역시 수백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장기 운용하며 연평균 10% 안팎의 수익을 실현해왔다. 이들은 전문 운용팀이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 대체투자를 포함한 분산 포트폴리오로 장기 수익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하버드의 운용수익은 대학 연간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수업료나 정부 보조에 의존하지 않고도 세계적 연구자를 유치하고 최첨단 설비를 유지할 수 있는 ‘자생적 선순환’이 가능한 구조다.
반면 일본의 주요 사립대·국립대 펀드 규모는 이들에 비해 극히 적다. 예를 들어 게이오기주쿠대의 기금은 수백억엔 수준, 도쿄대 역시 수백억엔에 불과해 격차는 크다.
대학 경영 전문가들은 이 격차를 좁히려면 기부문화의 확산과 함께 운용 역량의 전문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엔다우먼트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20~30년의 장기 전략과 일관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선행 사례들…‘도쿄대 채권’과 사학의 운용
국립대 중 먼저 움직인 곳은 도쿄대다. 2020년대 초반부터 대학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고, 2024년 12월에는 세 번째로 110억엔(약 1,000억 원) 규모의 서스테이너빌리티 본드를 장기물로 발행했다. 대학이 자본시장과 직접 마주하는 이 시도는 대학 재무의 다각화를 상징한다.
사립대 중에서는 게이오대가 선도적으로 자체 운용 성과를 쌓아왔다. 사립대는 거버넌스의 유연성을 활용해 수익 기반을 다변화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점이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대학 경영의 기업화’라는 더 큰 흐름의 일부다. 연구자 중심의 합의제 운영 모델에 더해 CFO(최고재무책임자) 도입, 전문 운용 기관의 활용 등 기업형 거버넌스가 도입되고 있다.
도쿄과학대의 ‘야망’…의공연계와 하이브리드 순환
이런 환경에서 도쿄과학대가 제시한 5,000억엔 펀드 구상은 질적으로 다르다. 단순한 자산 증식이 아니라 ‘연구 × 투자’의 하이브리드 순환을 설계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대학이 겨냥하는 분야는 이공학과 의치학의 통합에서 나오는 ‘의공연계’형 스타트업이다. 인공관절이나 의료기기, 재생의학 등은 기술 완성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상용화에 성공하면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대학이 보유한 기술의 지분이나 라이선스 수입을 펀드로 환류하면 ‘번 돈이 다시 연구로 돌아가는’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문부과학성은 인증 과정에서 도쿄과학대의 모델이 ‘일본형 신모델’이 될 가능성을 지니며, 임상계 교원의 연구시간 확보 방안이 야심적이라고 평가했다. 대학 측은 박사과정 학생에 대한 연간 지원을 400만~500만엔(약 3,636만~4,545만 원) 수준으로 끌어올려 우수 인재를 국내에 머무르게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도쿄과학대의 접근은 연구 자산의 사업화와 엔다우먼트 축적을 병행하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의공연계는 스타트업 생태계와 상성이 좋아, 내부에 대학형 VC와 유사한 기능을 갖추는 방향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 — 대학 발 스타트업 자금조달에 정통한 금융 애널리스트 카와사키 카즈유키.
변화의 본질
이 움직임은 학계만의 변화가 아니다. 기업의 연구개발 담당자와 벤처 투자자에게도 중요한 구조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첫째, 대학이 ‘장기적·안정적 연구 파트너’로서 더 신뢰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외부 자금에 의존하던 대학은 단기 예산에 묶여 장기 공동연구를 설계하기 어려웠다. 자체 재원이 확보되면 10년 단위의 심층적 산학협력이 현실화할 수 있다.
둘째, 지적재산(IP)의 자산 가치가 가시화된다. 대학이 사업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면,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한 연구 성과들이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 딥테크 분야에 관심을 둔 기관투자자에게는 대학 재무의 투명성이 중요한 투자 판단 요소가 된다.
셋째, 거버넌스 개혁이 가속화한다. 도쿄과학대는 이사장·총장(대학 총괄 이사)으로 대표되는 듀얼 리더십 체제를 도입했다. 연구자 합의 중심의 전통적 모델에서 관리책임과 연구 자유를 분리·통합하는 이 같은 구조 전환은 대학 경영을 넘어 전문 조직 운영 전반에 시사점을 준다.
남은 과제…연구의 자유와 시장 논리의 긴장
물론 리스크도 크다. 엔다우먼트 운용은 시장 변동성에 노출된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하버드조차 단기간에 자산이 크게 줄어든 사례가 있다. ‘벌어야 한다’는 압박이 연구의 방향을 좁힐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5,000억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기부문화의 형성, 스타트업 육성의 실적 축적, 우수한 운용 인력 확보 등 여러 난제가 동시에 해결돼야 한다. 이런 목표는 단기 성과가 아니라 장기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모두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일본형 엔다우먼트가 궤도에 오르려면 최소 10~15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핵심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거버넌스 개혁과 인재 양성이 함께 진전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 전문가 의견
그럼에도 도쿄과학대의 도전은 의미가 크다. 정부 의존의 관행을 벗어나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율적으로 자원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일본 고등교육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본격적 논의를 촉발하고 있다.
과학강국으로서 일본의 연구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이번 시도가 단순한 제도 실험으로 끝날지, 아니면 차세대 노벨상 수상자와 세계를 바꿀 딥테크를 배출하는 기반이 될지는 대학뿐 아니라 기업·투자자 등 사회 전체가 주목해야 할 문제다.
(글=BUSINESS JOURNAL 편집부, 협력=카와사키 카즈유키/금융 애널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