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 나라인 일본의 기업들 사이에서 이른바 ‘탈 오라클’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오랫동안 대기업 핵심 시스템의 표준처럼 쓰였던 오라클 DB가 이제는 높은 라이선스 비용과 벤더 종속 문제로 다시 검토 대상에 오른 것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일본 대기업의 핵심 업무 시스템은 빠르게 고도화됐다. 금융, 제조, 유통, 통신 등 대규모 거래 처리를 안정적으로 감당할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했고, 그 중심에 오라클 DB가 있었다.
높은 가용성, 방대한 데이터 처리 능력, 안정적인 지원 체계는 기업들에 큰 신뢰를 줬다. 하지만 클라우드 전환과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한때 기업 IT의 안전판으로 여겨졌던 오라클 DB가 이제는 유연한 시스템 전략을 막는 부담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 비싼 라이선스와 벤더 종속이 부담으로
기업 IT 전략 회의에서 ‘탈 오라클’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비용 부담과 벤더 종속이다.
오라클 DB의 라이선스 구조는 복잡하다. CPU 코어 수나 사용하는 기능에 따라 비용이 쌓이고, 연간 유지보수 비용도 라이선스 가격의 20% 안팎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장기간 운영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 비용이 상당한 부담이 된다.
최근에는 상황이 더 까다로워졌다. 엔트리급 제품 제공이 줄어들고, 오라클 클라우드 인프라로의 이전을 유도하는 판매 전략이 강해지면서 사용자 기업의 선택지가 좁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한 번 오라클 DB 중심으로 시스템을 만들면 다른 데이터베이스로 옮기기 어렵다는 점이다.
애플리케이션을 크게 손봐야 하고, 특정 기능이나 저장 프로시저에 깊게 의존한 경우 이전 난이도는 더 높아진다. 클라우드 환경에 따라 라이선스 조건이 달라져 사실상의 이전 비용이 크게 늘어나는 사례도 있다.
클라우드 시대에는 유연한 시스템 구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특정 DB와 벤더에 묶이면 멀티클라우드나 클라우드 전환 전략을 세우기 어려워질 수 있다.
과거의 안정감이 이제는 무거운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 아마존의 오라클 이탈이 준 충격
탈 오라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한때 세계 최대 규모의 오라클 DB 사용자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 내부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자체 개발 데이터베이스로 옮겼다.
대표적인 기술이 클라우드용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인 Amazon Aurora와 분산형 NoSQL 데이터베이스인 DynamoDB다.
아마존 킨들, 전자상거래 장터, 물류 관리 같은 거대 서비스 기반도 결국 오라클 DB에서 이들 시스템으로 이전됐다.
AWS 엔지니어링 부문은 당시 수천 개 데이터베이스를 단계적으로 이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수억 달러 규모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사례는 전 세계 IT 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세계 최대급 거래 처리를 하는 기업도 오라클을 벗어날 수 있다면, 다른 기업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 일본 기업도 단계적 전환 시작
이 흐름은 일본 기업으로도 번지고 있다.
교육 대기업 베네세코퍼레이션은 태블릿 학습 서비스 ‘챌린지 터치’의 기반을 새로 바꿨다. 온프레미스 오라클 환경에서 Microsoft Azure의 클라우드 데이터베이스로 이전한 것이다.
이를 통해 하드웨어 조달 비용과 라이선스 비용을 줄였다. 동시에 클라우드의 확장성을 활용해 접속량이 갑자기 늘어나는 상황에도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다나베미쓰비시제약의 사례는 더 현실적인 전략을 보여준다. 이 회사는 시스템마다 적합한 데이터베이스를 고르는 방식을 택했다.
옮길 수 있는 시스템은 PostgreSQL이나 SQL Server로 이전한다. 클라우드 환경은 Azure 중심으로 다시 설계한다. 오라클 의존도가 높은 시스템은 가상화 기반에서 효율성을 높인다.
즉 한 번에 모두 바꾸는 방식이 아니다. 단계적으로 의존도를 낮추는 하이브리드 전략이다.
대기업 핵심 시스템은 수십 년 동안 운영된 경우가 많다. 이런 시스템을 한 번에 모두 갈아엎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신규 개발부터 오픈 기술을 적용하고, 주변 시스템부터 점진적으로 바꿔 오라클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 PostgreSQL이 판을 바꿨다
탈 오라클을 가능하게 만든 가장 큰 기술적 배경은 PostgreSQL의 발전이다.
PostgreSQL은 오픈소스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다. 과거에는 연구용 데이터베이스라는 이미지도 있었지만, 지금은 기업 업무에서도 충분한 성능과 신뢰성을 갖춘 기술로 평가된다.
주요 클라우드 사업자들도 PostgreSQL 호환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고 있다. Amazon Aurora PostgreSQL, Google Cloud SQL, Azure Database for PostgreSQL이 대표적이다.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라이선스 비용 부담이 적고, 클라우드 환경에서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새로 만드는 시스템에서는 처음부터 PostgreSQL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존 오라클 DB를 억지로 대체하기보다, 신규 업무와 주변 시스템부터 오픈소스 DB를 적용하는 흐름이다.
과거 오라클 DB가 선택된 가장 큰 이유는 신뢰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클라우드의 이중화 기술과 오픈소스 DB의 성숙으로 격차가 줄었다.
비용과 유연성을 함께 고려하면 PostgreSQL을 선택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 탈 오라클 성공의 조건
물론 오라클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오랫동안 운영된 시스템일수록 오라클 전용 기능이나 저장 프로시저에 깊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DB만 바꾼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성공적인 전환에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단계적 이전이다. 모든 시스템을 한꺼번에 바꾸기보다 신규 시스템이나 주변 시스템부터 오픈 기술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는 기술 인력 확보다. PostgreSQL이나 클라우드 DB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필요하다.
셋째는 경영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다. 데이터베이스 이전은 단순한 IT 비용 절감이 아니다. 특정 벤더와의 힘의 균형을 다시 짜는 경영 판단이다.
데이터베이스는 기업 시스템의 심장부다. 어떤 벤더에 의존하느냐는 단순한 기술 선택이 아니라 기업의 IT 주도권과 직결된다.
■ 기업이 IT 주도권을 되찾는 흐름
1990년대 오라클 DB는 기업 IT에 안정과 신뢰를 줬다. 하지만 클라우드와 오픈소스 시대에는 기업이 원하는 가치가 달라지고 있다.
지금 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특정 벤더에 묶이지 않는 유연한 IT 기반이다.
데이터의 주도권을 기업이 직접 쥐고,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려면 시스템의 자유도가 높아야 한다.
탈 오라클은 단순한 IT 유행이 아니다. 기업이 IT 인프라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구조적 전환에 가깝다.
일본 기업의 디지털 전환이 앞으로 얼마나 빠르고 유연하게 진행될지는, 데이터베이스 전략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