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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 기다릴 필요 없다” EV 트럭, 배터리 5분 교환 시대 열리나

비즈니스저널 편집부 | 2026.06.26

출처 : 비즈저널
출처 : 비즈저널

EV 트럭 시장에서 충전이 아닌 ‘배터리 교환’으로 승부를 걸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사 CATL과 영국 최대 전력회사 옥토퍼스 에너지가 손잡고 유럽 EV 트럭용 배터리 교환망 구축에 나서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2일 런던에서 열린 옥토퍼스 에너지의 연례 행사 ‘에너지 테크 서밋’에서 양사는 합작회사 ‘스왑토퍼스’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목표는 EV 트럭용 배터리 교환 네트워크를 유럽 전역에 전개하는 것이다.

양사의 계획에 따르면 2027년 영국에서 첫 메가허브, 즉 대형 교환 거점을 가동하고, 2035년까지 유럽 전역 30곳 이상으로 확대한다.

완전 가동 시 30만 대가 넘는 EV 트럭을 지원하고, 300억 파운드, 약 60조 원이 넘는 민간 투자를 끌어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겉으로는 친환경 물류 인프라 구축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에너지 관리, 지정학, 업계 표준을 둘러싼 더 큰 경쟁의 한 장면에 가깝다.

■ 충전 시간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넘을까

상용 EV 트럭 보급의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충전 시간이다. 대형 트럭에 들어가는 대용량 배터리는 급속 충전을 사용해도 몇 시간이 걸린다.

디젤 트럭은 주유에 5~10분이면 충분하지만, EV 트럭은 충전하는 동안 차량이 멈춰 있어야 한다. 차량 가동률이 수익과 직결되는 물류 사업자에게 이는 무시하기 어려운 경제적 손실이다.

스왑토퍼스가 제안하는 배터리 교환 방식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CATL이 중국에서 전개해온 중대형 트럭용 ‘치지’ 기술은 1기당 171kWh 배터리 모듈을 약 5분 만에 교환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2025년 말 기준 치지 에너지 브랜드의 교환 스테이션이 305곳 운영되고 있으며, 주요 중대형 트럭의 95% 이상에 대응할 수 있는 표준화도 진행 중이다.

옥토퍼스 에너지의 그레그 잭슨 CEO는 EV 트럭이 이미 운행 비용 면에서 디젤보다 유리하며, 문제는 계속 달릴 수 있느냐라고 설명했다. 배터리 교환이 바로 이 지점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옥토퍼스는 장기적으로 배터리 교환 비용이 디젤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낮아지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디젤에 비해 구조적인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 교체 스테이션이 ‘움직이는 발전소’가 된다

스왑토퍼스가 노리는 것은 단순한 배터리 교환소가 아니다.

각 메가허브에는 충전 중이거나 대기 중인 대량의 배터리 모듈이 상시 보관된다. 이 배터리들은 유럽의 풍력·태양광 발전량 변동을 흡수하는 대규모 저장 장치처럼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람이 강해 전력이 남는 심야 시간대에 배터리를 한꺼번에 충전하고, 전력 수요가 몰리는 낮이나 저녁 시간대에는 전력망으로 전기를 되돌려보내는 방식이다. 이는 가상발전소, 즉 VPP 개념과 맞닿아 있다.

스왑토퍼스의 윌리엄 로우 CEO도 교환소에 있는 대량의 배터리가 전력망이 필요로 할 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각 허브가 소규모 발전소처럼 기능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이런 운영에는 복잡한 과제도 따른다. 배터리를 빌려 쓰는 트럭 사업자나 제조사가 자신들의 배터리가 전력망 조정에 사용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수명에 미치는 영향과 수익 배분 문제도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물류 인프라와 에너지 인프라를 하나로 묶겠다는 구상은 단순 충전 설비 확충과는 다른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 왜 영국에서 시작하나

이번 협력을 이해하려면 EU와 중국 사이의 무역 갈등도 봐야 한다.

EU는 2024년 10월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35%를 넘는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공식 시행했다. 기존 10% 관세에 더해지는 방식이다.

여기에 EU 배터리 규제도 공급망 투명성 확보와 탄소 배출 정보 공개를 요구하며 중국 제품에 대한 압박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스왑토퍼스의 전략은 이런 규제의 틈을 파고든다. EU의 추가 관세 대상은 중국에서 수출되는 차량이다. 배터리나 부품, 배터리 교환 서비스 플랫폼 자체는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다.

또 영국은 EU 탈퇴 이후 독자적인 통상 정책을 갖고 있다. 동시에 2035년 이후 디젤 신차 판매 금지를 향해 탈탄소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이런 환경이 첫 실증 무대로 영국이 선택된 배경으로 보인다.

유럽 중대형 운송의 전동화는 2030년 배출 규제 강화를 앞두고 피하기 어려운 과제가 됐다.

2030년 이후 신규 중대형 트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줄여야 한다. CATL과 옥토퍼스는 이 규제의 압력을 사업 기회로 활용하려는 셈이다.

에너지 정책 전문가들은 배터리 교환 방식의 핵심이 인프라 표준화의 선점 효과에 있다고 본다.

배터리 규격, 클라우드 관리 소프트웨어, 에너지 거래까지 한 번에 설계한 사업자가 후발 주자를 밀어낼 수 있는 구조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 표준을 잡는 쪽이 시장을 묶는다

배터리 교환 방식이 확산되면 핵심은 표준화다.

현재 스왑토퍼스가 채택하는 CATL 배터리 모듈 규격에 맞는 차량이어야 이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다. CATL은 중국에서 이미 10곳 이상의 트럭 제조사와 함께 30종이 넘는 배터리 교환 대응 차종을 개발해왔다.

같은 흐름이 유럽에서 전개된다면, 주요 물류 거점이 CATL 규격 중심으로 구축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해당 규격에 맞지 않는 트럭은 사실상 주요 교환 인프라에서 배제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다. 누가 인프라의 표준을 잡느냐의 문제다. 통신 업계의 eSIM이나 결제 인프라의 Visa·Mastercard처럼, 인프라를 장악한 쪽이 최종 주도권을 가져가는 구조는 여러 산업에서 반복돼왔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기술 자체의 우열보다 누가 표준을 가져가느냐가 시장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 CATL이 유럽에서 배터리 교환 표준을 잡는다면, 이는 단순한 배터리 판매를 넘어 물류 인프라의 뿌리를 쥐는 일이 된다.

■ 리스크와 남은 과제

물론 스왑토퍼스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우선 유럽의 중대형 트럭 제조사들이 CATL 규격 배터리를 채택할지가 불확실하다. 볼보, 스카니아, MAN, 메르세데스 등 주요 업체가 공식적으로 스왑토퍼스 대응을 발표한 것은 아니다.

각 제조사가 독자 규격을 유지할지, 업계 공통 표준이 만들어질지에 따라 사업 확장 속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 차량과 배터리를 분리하는 사업 모델도 새로운 과제를 만든다. 자산 소유권, 보험, 회계 처리 문제가 대표적이다. 중국에서도 이 모델은 아직 시행착오를 겪고 있으며, 이를 유럽의 법제도와 상거래 관행에 맞추는 과정도 쉽지 않다.

대규모 배터리 저장 인프라가 특정 기업 그룹에 집중되는 것에 대해 유럽 에너지 규제 당국이 심사나 규제를 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 결국 핵심은 구조를 누가 설계하느냐다

스왑토퍼스가 그리는 그림은 EV 트럭의 충전 문제 해결에 그치지 않는다. 배터리 제조, 유통, 충전, 전력 거래, 데이터 관리를 하나로 묶은 플랫폼을 유럽 물류의 핵심 인프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 전략의 성패는 앞으로 몇 년 동안 유럽 트럭 제조사와 물류 사업자가 어떤 조달·인프라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동차 산업과 에너지 산업의 경계가 빠르게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경쟁의 초점은 좋은 차량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누가 배터리와 전력망, 데이터, 물류 운영을 하나의 구조로 묶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EV 트럭 시장의 승부는 충전 속도 경쟁을 넘어, 인프라 전체를 누가 설계하느냐의 싸움으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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