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경제신문이 자체 지표로 전국 약 160개 지자체를 평가한 ‘애니메이션 성지력’ 순위가 지난 5월 보도되며 주목을 받았다.
1위는 홋카이도 도야호정, 2위는 기후현 시라카와촌이었다. 두 곳 모두 주요 국제공항에서 몇 시간이 걸리는 지방 지자체다.
이 결과는 관광업계에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왜 교통이 불편한 지방이 오히려 세계 팬들을 끌어들이는가.
그 답은 인바운드 관광 구조의 변화에 있다.
■ 숫자로 드러난 애니메이션 성지의 힘
먼저 시장 규모를 볼 필요가 있다. 관광청의 2024년 인바운드 소비동향 조사에 따르면, 방일 외국인 중 8.1%가 일본 체류 중 영화나 애니메이션 관련 장소를 방문했다. 인원으로 환산하면 연간 약 299만 명이다.
2019년 같은 비율이 4.6%였던 점을 고려하면, 코로나 이후 애니메이션 관광 수요는 빠르게 확대됐다.
2025년에는 방일 외국인 수가 4268만 명을 넘었고, 인바운드 소비 총액도 9조5000억 엔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 흐름을 떠받치는 요인 중 하나로, 애니메이션을 계기로 한 지방 방문이 기능하기 시작했다.
Netflix가 2025년 Anime Expo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 플랫폼에서 애니메이션 연간 시청 횟수는 2024년 10억 회를 넘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제 유럽, 미국, 중동, 동남아시아까지 아우르는 세계적 콘텐츠가 됐고, 그 열기가 일본 지방 관광이라는 실제 수요로 전환되고 있다.
■ 불편함이 오히려 가치가 되는 이유
애니메이션 팬의 성지순례에는 일반 관광과 다른 심리가 작동한다. 관광 지역 만들기와 지역 브랜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성취감’이다.
접근이 어려울수록 팬들은 “마침내 여기에 도착했다”는 특별한 만족감을 얻기 쉽다. 게임을 클리어했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다. 이런 경험은 관광지의 희소성과 연결되며, 불편함 자체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역설적인 구조를 만든다.
■ 소비 단가가 높고 재방문도 쉽다
애니메이션 팬은 현지에서 굿즈, 숙박, 음식에 돈을 쓰려는 성향이 강하다.
사이타마현 가스카베시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2025년도 이 도시의 관광안내소를 찾은 외국인은 전년 대비 1.5배인 약 3만6800명에 달했다. 대부분은 만화·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 성지순례가 목적이었다.
SNS를 통한 정보 확산이 신규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이후 재방문객이 생기는 선순환은 지방 체류형 관광의 이상적인 형태로 꼽힌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는 사이타마현 구키시의 와시노미야 신사가 자주 언급된다. 애니메이션 ‘러키스타’ 방영 이후 이 신사의 새해 참배객은 방영 전 13만 명에서 최대 45만 명으로 늘었다. 일본정책투자은행은 10년간 약 31억 엔의 경제 파급 효과가 있었다고 추산했다.
■ 도야호정, 오타쿠 문화를 지역 문화로 만든 곳
홋카이도 도야호정은 단순히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지역이 아니다. 오랜 기간 ‘도야호 만화·애니메이션 페스타’를 열며 지역 전체가 서브컬처를 받아들이는 문화적 토대를 만들어왔다.
온천가와 아름다운 호숫가라는 자연 자원에 더해, 팬이 주민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돼 있다. 덕분에 일회성 방문이 반복 방문으로 이어지기 쉬운 구조가 만들어졌다.
인바운드 대응 측면에서도 다국어 안내와 숙박시설 연계가 진행되고 있다. 도야호정은 ‘성지력’을 종합적으로 높인 지자체로 주목받고 있다.
■ 시라카와촌, 세계유산과 서브컬처의 공존
기후현 시라카와촌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시라카와고 갓쇼즈쿠리 마을이라는 강력한 관광 자산을 갖고 있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쓰르라미 울 적에’의 배경지라는 요소가 더해지며, 일반 관광객과 애니메이션 팬이 교차하는 독특한 관광지가 됐다.
전통 경관과 서브컬처가 공존하는 이 구조는 양쪽 관광객 모두에게 ‘이곳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제공한다. 관광과 문화 보존이 충돌하기 쉬운 세계유산 지역에서 이런 공존이 비교적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 다음에 뜰 지역의 조건
앞으로 인바운드 유치에서 성장 가능성이 큰 지역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접근이 적당히 어렵다는 점이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감이 성취감을 만든다. 주요 공항이나 신칸센역에서 2~3시간 거리이고, 교통수단이 제한적이지만 존재하는 지역은 팬에게 ‘여행의 목적지’가 되기 쉽다. 동북 산간 지역, 시코쿠 해안 지역, 규슈의 섬 지역 등이 잠재력을 가진 곳으로 꼽힌다.
둘째는 자연과 전통 건축이 남아 있고, 사진으로 남기기 좋은 풍경이 있는 지역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처럼 최근 인기 애니메이션은 정교한 배경 미술이 특징이다. 그 배경이 된 장소에는 사진으로도 비일상성이 살아나는 풍경이 요구된다.
관광청 조사에서도 방일 외국인이 여행 정보를 얻는 매체로 동영상 사이트와 SNS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영상과 사진으로 확산되기 좋은 장소인지는 인바운드 유치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셋째는 판권사와의 세심한 관계 구축 및 팬을 재방문자로 만드는 장치가 있는 지자체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지역은 제작사나 권리자와 신뢰 관계를 만들고, 주민을 함께 참여시키는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간다.
한정 스탬프 랠리, 캐릭터와 지역 전통공예를 결합한 굿즈, 팬과 주민이 직접 만나는 이벤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장치가 일시적인 붐을 관계인구 창출로 바꾼다.
■ 성지력을 유지하기 위한 과제
물론 애니메이션 관광에는 과제도 있다.
조용한 자연환경과 손대지 않은 경관이 매력인 지역일수록, 갑작스러운 관광객 유입으로 그 가치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 쓰레기, 소음, 교통 정체, 사유지 무단 출입 같은 문제는 여러 성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관광 지역 만들기 전문가들은 오버투어리즘의 조짐은 붐 초기 단계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민의 이해 없이 지속 가능한 관광은 성립하기 어렵다.
또 애니메이션 작품의 인기 주기는 영원하지 않다. 방송 종료와 함께 방문객이 급감하는 위험을 피하려면, 온천, 음식 문화, 사람과의 교류 같은 지역 고유의 매력과 연결해야 한다.
성지순례를 계기로 온 팬이 다음에는 지역 자체의 매력을 찾아 다시 오도록 동선을 설계한 지자체만이 장기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2025년 애니메이션 성지 88곳 선정에 참여한 도도부현이 36곳으로 역대 최다 수준에 이르는 등, 성지순례의 경제 효과를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은 계속 빨라지고 있다.
일본 정부도 2024년 9월 콘텐츠 산업 민관협의회에서 애니메이션을 일본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앞으로 민관 협력도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